한국가곡

떠나가는 배 (양중해 시, 변훈 작곡)

내마음의노래 2024. 6. 5. 17:37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을 저배야
야속해라
날 바닷가에 홀로 버리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떠나가는 배-원시)

가곡 ‘떠나가는 배’(작사 양중해 작곡 변훈)의 주인공은 1978년 타계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당시 그의 시를 사랑한 한 여대생과의 6개월간에 걸친 사랑의 도피 끝에 제주 부두에서 이별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하는 시인의 증언이다.

노랫말을 쓴 양중해(1927~2007) 시인은 목월이 50년대 중반 잠시 제주에 머물 때 시와 술을 나눈 절친한 친구 사이.

양 시인은 “1953년 휴전 무렵 유부남이던 목월이 젊은 여자와 피란 겸 사랑의 도피를 위해 제주에 왔으나 끝내 이별하게 됐으며,제주부두에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을 시로 옮긴 게 바로 ‘떠나가는 배’”라고 말했다. 양 시인은 지난해 7월 제주문화원에서 열린 한 문학강좌에서도 ‘떠나가는 배’에 대해 “목월의 아픈 이별을 담은 시”라고 거론한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목월이 당시 머물렀던,지금은 사라진 제주시 관덕정 인근 동화여관 가족들에 따르면 목월은 한국전쟁 막바지에 제주에 왔으며,여대생(당시 홍익대 재학)과 함께 6∼7개월간 동화여관에 머물렀다.
목월과 함께 온 여인의 성은 한씨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일마다 근처 서부교회에 나가 예배를 봤고,몸이 아플 때는 목월이 직접 부축하거나 업고 갔다.이 여인은 아주 깔끔해서 빨래가 잦은 편이었고,식사도 여관에서 내주는 음식 대신 직접 지어 목월에게 내왔다.또 아이들을 좋아해 과자와 과일을 자주 나눠줬고 튀김 등을 직접 만들어 줬다고 한다.

여관에서도 시낭송회가 자주 열렸는데 여인은 늘 목월 곁에 앉아 경청하곤 했다.
여관집 아들 이창주(64·당시 중학교 2학년)씨는 “그 여자는 목월에게 꼭 ‘선생님’이라고 불러 선생님과 제자 사이 같았으며,지금의 여느 탤런트보다도 예뻤고 몸도 호리호리했으나 자주 아파 병원 출입이 잦았다.”고 기억했다.또 “목월에게 ‘이름이 왜 목월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느날 밤 나무에 걸린달이 너무 고와 ‘영종’이라는 이름 대신 ‘목월(木月)’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목월과 여자가 이별할 무렵 여관에 있던 짐을 도둑맞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이 여인은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사진첩만 찾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범인이 이미 아궁이에 넣어 불태워 버린 후여서 몹시 상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짐 소동이 있고 얼마 후 목사인 이 여인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내려왔고,가지 않겠다는 딸을 이틀 밤낮에 걸쳐 설득한 끝에 사흘째 되는 날 서울로 가기 위해 부두로 갔다.이씨도 양중해·박목월 선생과 함께 부두까지 배웅 나갔으며 여인과 목월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으로 미뤄 우는 것 같기는 했는데,우리 쪽으로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더군요.아마도 정인(情人)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겠지요….”
이씨는 “여관에 있는 동안 이런 정 저런 정 많이 들어 그때 무척 울었다.”며 당시 처연히 고개를 떨구며 돌아서던 목월 선생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당시 제주제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양중해 시인은 집으로 돌아온 즉시 ‘두 정인의 부두에서의 이별’을 시로 옮겼고,같은 학교 음악교사이던 변훈에게 음을 붙이도록 해 가곡 ‘떠나가는 배’는 탄생했다.
그동안 기록(잡지 ‘시인세계’ 등)에 따르면 목월과 이 여대생은 시인과 문학소녀로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결국 제주도로 잠행했다.그때 두 사람은 겨울 한복을 지어 제주로 찾아간 부인의 인품에 목월이 반성하고 그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사랑도 끝이 나며, 이로써 목월에게 ‘이별의 노래’를 남겼다는 내용만 나와 있을 뿐이다.

 

작곡자 변훈은 함흥출생(1926~2000.8.29)이다. 1946년 피아니스트로 첫 데뷔한 이후 1954년 연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82년 이후 클래식 음악가 분야에서 사실상 은퇴한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 파키스탄 총영사, 포르투갈 대리대사를 지낸 외교관이었다. 그는 개인지도로 음악을 배웠으며 전쟁이 나자 제주로 피난을 와서 제주 제일중고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떠나가는 배'의 작사자 양중해((1927~2007.4.4) 제주출생, 제주문화원장 역임)는 이 학교 교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둉료 국어교사였다.


시 '떠나가는 배'는 양씨가 서울서 피난와서 지내던 친구 시인의 이별 장면을 읊은 가사로 알려져 있다. 1952년 어느 유명시인이 처녀와 연애를 하다 전쟁 때 함께 제주로 피난을 오게 되었는데 육지에 있던 그 처녀의 부모가 수소문하여 제주에 있던 처녀를 찾아내고는 강제로 배를 태워 두 사람을 갈라놓고 말았다. 시인은 배가 파도속에 점으로 보일 때 까지 비탄에 잠겨 이별을 서러워 하였으나 그 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한편 변훈 씨가 말하는 작곡 악상은 조금 다르다.
그는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었으므로 리얼한 이별의 슬픔을 느꼈을 것인바 그의 회고에 의하면, .
"하루 한번씩 부산에서 피난민을 태운 배가 제주항에 닿으면 항구는 통곡으로 변합니다. 뒤쳐진 가족이나 친구가 왔나 하고 먼저 와 있던 피난민들이 모두 모이죠. 만나면 기뻐서 울고 못 만나면 비통해서 울고, 어떤 이는 기다릴 수 없어 다시 그배로 가족을 찾아 뭍으로 떠나지요" 

이 곡의 초연은 1952년 부산에서 열린 젊은 작곡가의 밤에서 테너 안형일 씨의 초연으로 불려졌으며 이듬해 레코드에 취입되었으며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지게 되었다.

양중해 시, 변훈 작곡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는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물에
애끓이 사라져 내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오, 설운 이별
님 보내는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면 미친 듯이
울부짖는 고동소리
님이여 가고야 마느냐

 

https://youtu.be/PWuIfCyCLrg

바리톤 김성길

 

https://youtu.be/MLTCFFc6fB4

테너 안형일